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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주제인 블로그... 그냥 주제 없는 블로그입니다. 전공 분야나 예전 관심 분야 등등에 관한 글이 우선입니다만, 두어 문단을 넘길 만한 글이라면 대강 정리해 기록합니다. 학부생입니다. 트위터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aurynj.net/ 어­리


 
 

글을 쓰다 보니 주제가 끊임없이 길고 무거워져서 원래 페이스북에 쓰던 글을 결국 본 블로그로 끌고 왔다.


동영상 강좌의 인기가 폭발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 동영상 강좌가 책으로 쓰인 강좌에 비해 낫다는 생각이 안 든다. 동영상 강좌는 한 편에 하나의 주제만 담을수록 편하고, 허술한 동영상은 켜 두고 보기도 힘들다. 반면에 책은 꽤 방대한 내용을 만들어도 소화하는데 무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다소 허술한 글이라도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이 둘을 비교해 보자면 글은 순서를 무시하고 대강 읽을 수도 있고, 전산화된 문서는 검색으로 내용을 찾을 수도 있는 등 수많은 원인이 있다. 그래서 아직도 우리는 책을 사용하고, 글을 쓴다.

왜 동영상은 글처럼 대강 보거나 검색할 수 없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책은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텍스트는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언어적 정보의 매개체이다. 다시 말해, 어떤 정보가 텍스트로 작성되어 있다면 그 정보는 원시적 형태로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텍스트로 작성된 정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연구는 컴퓨터의 발명 이전부터 있어 왔다. 지금 컴퓨터로 구현된 정보 처리 기술은 인류 역사와 문명의 산물인 것이다.

텍스트에 대해서 컴퓨터가 어느 수준으로 똑똑해졌는지를 알고 싶다면 구글을 보면 된다. 구글에 '사진술'을 검색하면 'photography'는 물론 '사진학', '사진학과' 등 수많은 유사한 의미의 검색 결과가 함께 나온다. 기계학습의 성과는 놀랍다. 단어들 간의 의미 분류를 찾는 것이 이 일의 핵심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정보 처리 기술은 한 언어로 쓰인 글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고, 그것을 이용해 내용을 학습하며, 내용을 학습한 결과를 다시 언어 간 번역에 반영하는 데 이르른 것이다.

한편 축음술과 사진술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기술이며,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소리와 좋은 영상은 분명히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하물며 이들의 시공간적 특성을 결합시켜 만든 동영상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축음술과 사진술이 오래 되지 않은 기술이라는 것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만약 기록된 소리와 기록된 화면이 우연히 텍스트만큼이나 일찍 발명되었다면, 소리와 화면의 정보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책을 읽듯 동영상도 편히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 앞에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지금처럼 수요에 맞추어 기술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소리와 화면을 나타내는 기술이 있기 때문에, 소리와 화면을 파동의 집합으로 분해하고, 소리에서 목소리와 악기 소리를 분리하고, 사진에서 얼굴을 찾는 기술이 발전해 왔다. 구글은 유튜브의 동영상들을 토대로 영상에서 물리적인 물체를 구별해 내는 학습 기술을 공개했다.

그러나 이런 기술은 기술을 위한 기술이다. 텍스트에 비유하자면 손으로 글씨를 쓰는 기술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손으로 쓴 텍스트로부터 문자를 추출하거나 필적을 감지하는 등의 기술이 여기에 해당한다. 문자열이나 필적은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의미있게 여기는 정보일 뿐, 그 자체가 텍스트의 본질인지는 불분명하다. 이런 접근은 사실 소리와 화면, 그리고 이들의 결합에 대한 본질적인 고찰과는 거리가 멀다.

한편 두 번째 방식은 소리와 화면에 어떤 정보가 담길 수 있는지에 관한 정성적인 연구이다. 이는 XHTML과 온톨로지 의미론과도 관련이 있다. 텍스트의 본질에 대해서는 유사 이래로 이런 연구가 지겹도록 오랫동안 행해져 왔다. 그리고 그 결실의 일부로 우리는 하이퍼텍스트 문서에 대해 XHTML로 정형화된 의미론을 정의할 수 있었다. 비록 XHTML은 발전하는 컴퓨터 기술을 따라가지 않고 꿋꿋이 실패한 모델이지만, XHTML만큼 완비된 온톨로지 모델은 없을 것이다.

XHTML은 우아하게 재구성할 수 있는 하이퍼텍스트의 정보 모델이다. 비록 모든 텍스트 기반 정보가 기존의 온톨로지 모델로 우아하게 재구성될 수는 없지만, 어떤 매체에 그런 프레임의 유무는 그 매체의 활용에 대한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직결된다. 지금은 아무도 소리에도, 화면에도 이와 같은 의미론을 제시한 바가 없다. XHTML2가 망하고 HTML5가 흥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HTML5를 나무랄 생각은 없다. 그것이 오늘날의 문서에 대한 합당한 모델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으로 얻을 수 있는 결론이 몇 가지 있다. RDF는 접근성을 높여 주는 데이터가 아니라 그저 메타데이터인 것과 마찬가지로, 동영상에 자막을 붙이는 것도 접근성을 높여 준다고 보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자막은 동영상 플레이어에서 영상과 병행 재생되는 텍스트 기반의 또 다른 미디어일 뿐이다. 텍스트를 무조건 앞에서 1000자 자른다고 1000자 요약이 되지 않듯, 소리도 고속 재생을 한다고 요약되는 것이 아니다.

미래의 동영상은 어떨까? 글쎄, 사실 이미지에 대해서는 위에서 말한 '요약'에 해당하는 심 카빙(seam carving)이라는 좋은 예가 있다. 오디오에 대해서도 같은 게 가능할까? 동영상을 색인해 두고 요약하거나 검색하는 것이 가능할까? 물론 이쯤 되면 동영상은 텍스트와 동등해진다. 나는 XHTML처럼 모든 동영상을 의미 기반으로 재구성하고, 눈과 귀에는 그로부터 생성된 정보가 제공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동영상이 텍스트만큼이나 의도된 정보라는 확신조차도 지금 내게는 없다. 아무렴 어떤가. 일단 적절한 과학이 있다면, 기술은 그것을 토대로 꽃을 피울 것이다. 하이퍼텍스트가 하이퍼텍스트 고유의 의미론을 만들었듯, 앞에서 말한 '기술을 위한 기술'도 끊임없이 과학을 발전시킬 것이다.

IT, 우리는 제대로 보고 있나

Views/Overview | 2013.11.11 17:19 | Posted by 어­리

서론

2년 반 넘도록 쓰고 또 써서 낳는 지긋지긋한 글이다.

처음에는 고작 한 달이나 잡고 쓰기 시작했는데, 막상 쓰기 시작하니 반 년을 넘기고 있었다. 그래서 그때는 짧은 시일 내에 마무리할 셈치고 이런 서론을 붙여 놓았다.

구상은 긴데 글이 끝나지 않아서 짧게 쓴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 글이 누구를 위해 쓰인 건지 나도 모르겠다. 아마 관련 계열의 사람이 읽기에는 따분한 글이고 이쪽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뭐가 뭔지 모를 글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고민하면서 2년이 넘도록 이 글을 묵혔다. 이러다 글을 아예 버리게 될 것 같아 대강 마무리를 해 본다.

IT 강국이라는 타이틀

지금의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IT(정보기술) 강국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많은 곳에서 지적되었다. 국가와 같은 시스템 단위에서 키우지는 못해도 자랄 환경이나 만들어지면 좋았으련만, 거품이 한 번 끼고 나니 소프트웨어에 대한 인식은 바닥을 쳤다. 애초에 IT 산업은 기존 산업 체계마냥 공장으로 굴리기 힘들기 때문에, IT 자체에 투자해서는 큰 돈을 만지지 못했음은 물론, IT를 '키울' 방법이 딱히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이렇다 할 수익을 남겨 준 분야는 하드웨어였다. 기업도, 투자자도, 소비자도 모두 하드웨어에 열광했다.

그새 소프트웨어란 하드웨어를 돌리는 데 지나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국산 PC가 잘 설계되었냐면 그렇지 않다. 사실 시스템을 잘 설계한다는 말은 그 시스템을 돌리는 소프트웨어가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 성능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는 뜻인데, 그런 것보다는 당연히 외국 모델 베껴서라도 시장 선점하는 것이 중요했다. 어쨌든 스펙을 어떻게 짜든 잘 돌릴 수 있고 쓰기 만만한 건 MS 윈도우였다. 다들 윈도우를 썼고, 엔드유저를 위한 소프트웨어 정책도 윈도우 기준으로 세워졌다. 리눅스? 어디서 들어 보기는 했지만, 쓰려면 고생 좀 한다며. 그런 사람들은 알아서 잘 따라오겠지. 때가 되면 편승할 수 있을 거야. 일단은 일반인이 쓰는 OS와 업그레이드 위주로 가자고. 그렇게 한국형 스마트폰 옴니아가 나왔다.

옴니아2가 좋은이유!!삼성전자의 옴니아 2 발표 당시 프로모션. 한때 이 이미지는 한국인이 스마트폰을 선택하는 잘못된 기준들을 자조하는 데 쓰였다. 그러나 사실 요즘 안드로이드 폰도 이런 기준으로 경쟁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첫 아이폰 발표 당시 스티브 잡스는, 훗날 iOS로 알려진 자사의 아이폰 운영체제를 소개하면서 앨런 케이의 "People who are really serious about software should make their own hardware."라는 말을 인용한다. 우리나라는 그때에 비해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

그러나 IT의 커버리지가 공장에서 데스크, 모바일, 유비쿼터스, 스마트 식으로 넘어올수록 문제는 심각해졌다. 휴대폰의 성능 자체는 몇 년 전 PC 수준까지 상승했지만 여전히 '휴대폰'은 전화기였고, 연락처같은 부수기능은 필요한 만큼만 지원되었다. 물론 교과서스러운 꿈은 누구에게나 있었다. 이런 기기를 이용해 데스크탑의 연장선상에서 사람들과 더욱 복잡하게 통신하고 웹을 돌아다니는 한편, 플랫폼의 특성을 살려 인간 친화적인 네트워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아무도 IT의 본질에 대한 이와 상반되는 굳은 인식에 딴지를 걸지 않았다. 다들 하드웨어에 끼워맞춘 애플리케이션에는 그러려니 하고, 언젠가 하드웨어 기술이 발전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근본적인 의식의 문제임을 알고 있었던 사람은 이쪽 엔지니어들뿐이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가능성은 폭발적으로 현실화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소위 IT 강국이던 우리나라의 일류 애국 IT 기업들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외국 기업에 줄줄이 썰려 나갔다. 과연 어떤 중요한 게 빠졌던 걸까? 아니, 애초에 우리나라에 빠진 게 있긴 했던 걸까? 혹시 다들 세계의 IT를 주도한 대한민국을 위시해 사기성이 짙은 유행을 들고 빠지는 건 아닌가? 이런 의구심마저 우리나라에 희망을 건 소비자들 자신에 의해 한 해가 지나기도 전에 무참히 반증되고 말았다. 기기 성능은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폰 흥행 이래로 지금은 누구든 하드웨어라 부를 만한 것이 소프트웨어를 충분히 백업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 옴니아가 좋았다고 말하실 분?

진심으로 반성할 때가 되었다

지금의 산업은 농경 사회를 뒤엎은 경험이 있다. 산업의 영웅들은 새로운 지식과 기법을 들고 나와 사회의 패러다임을 빠르게 바꾸었다. 인간 생활을 고도로 집약할 수 있게 된 이래 도시가 나타나고, 거의 모든 가치는 도시에서의 쓸모를 기준으로 재편되었다. 농업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마 그 시대의 영웅들이 정보화를 산업에서 응용 가능한 수단 중 하나로 보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파악하면 쉬울 것이다.

그러나 그게 쉬운 일인가? 이 이야기를 결론짓기 전에 소프트웨어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하자. 소프트웨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어가 '프로그래밍'이다. '프로그래밍 패러다임'은, 우리가 사물을 관념화할 때 필요에 따라 본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을 제공한다. 사람이 책을 읽는 과정을 프로그램으로 만든다고 생각하자. 이 과정은 간략히 경우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해될 수 있을 것이다.

  • 사람이 책을 점유한다. 사람은 읽을 위치를 정해 책을 펼치고, 책으로부터 글자를 읽으며 책장을 넘긴다.
  • 사람은 책을 읽을 수 있다. 사람이 책을 골라 읽을 때 책은 현재 책장에 맞는 내용을 사람에게 돌려 준다.
  • 사람은 어떤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다, 책은 내용을 내보낼 수 있다. 책읽기는 그 내용 전달의 과정이다.

거의 모든 프로그래밍이란 이 중 하나 또는 하나 이상인 식이다.[각주:1] 프로그래머는 이렇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것을 0과 1로부터 따라할 수 있는 관점에서 재구성한다. 그런 과정이 없다면 전기가 통해 봤자 열과 소음을 생산할 뿐인 전기제품이 갑자기 만능의 괴물로 변할 수가 없다. 하드웨어 계열에서 매일 붙들고 있는 논리구조라는 것도 이 수준으로 오면 내내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된다. 물론 모든 소프트웨어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접근 방식도 조금 다르지만 말이다.

http://en.wikipedia.org/wiki/File:Linux_kernel_map.png요즘 스마트폰이 안드로이드와 아이폰의 대결 구도인 것은 이제 상식이다. 그림은 무료 운영체제 소프트웨어, 안드로이드의 기초인 리눅스 커널의 구조를 나타내는 사진이다. 리눅스 커널의 소스 코드는 종이로 인쇄하면 50만 장에 달한다. 수백 권짜리 전집에서 내용 간의 관계를 이처럼 한 장의 그림에 담을 수 있겠는가? 잘 만들어진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는 이것이 항상 가능하다.
(그림 원본 링크. 라이선스: 영어 위키백과 사용자 Conan 제작, CC 저작자표시 3.0 Unported)

주제넘게 관념적이라 생각한다면, IT의 본산인 미국을 보자. 좋은 소프트웨어를 설계하는 사람들은[각주:2] 키보드를 두드리는 최전방 엔지니어이기도 하지만, 이런 관념을 연구해 온 사람들이다. 이를테면, 요즘 많이 언급되는 '좋은 UX'는 사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에서 많이 강조되던 UI 디자인 원리, Use Case 일관성 등을 뭉뚱그려 이르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은 역사가 짧지만 단단한 입지를 가진 실용학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은 순수학문만큼이나 존중받지 못한다. 소프트웨어는 일단 단가로 후려치고 값싼 인력으로 빠르게 찍어 내서 20년 넘게 쓰는데, 누가 올바른 개념과 적합한 적용과 적절한 유지보수를 주장하겠는가. 이런 현실인데도 "컴퓨터공학의 한계"같은 글을 보고 있자면 솔직히 한심하다.[각주:3] 아직도 이공계 앞에서 겸손해지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오히려 이공계에 인문학이 필요하다며 설레발을 칠 뿐이다. 그 깨어 있는 학자님, 여태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공석 안 찾고 뭐 하셨는지.

요컨대 농업의 모토가 자연과 시간과 노동, 산업의 모토가 경영과 자본이라면 정보화는 그것으로 이해되지 않는 제 3의 물결인 셈이다. 누군가 만약 산업의 눈으로 농경을 모두 보았다거나, 농경의 눈으로 산업을 보았다고 하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코웃음이 나올 뿐이다. 물론 정보화 사회의 우월함을 주장할 생각은 추호의 여지도 없다. 필자는 산업계가 제발 소프트웨어라는 단어, 컴퓨터 사이언스라는 영역 앞에서 자만심을 버리고 고유성을 인정해 주기만을 바라는 것이다. 이 주장이 일부 산업의 영웅들에게는 멀고도 아득한 이야기가 되리라는 것을 잘 안다. 만약 그렇다면 적어도 뒤쳐지고 싶지 않은 입장을 공유하고, 이 시장에서 정보 산업이 자력으로 돈을 벌 길을 틀어막지나 않으면 된다.

어떻게 뒤쳐져 왔는가

지금 하게 될 이야기가 평범한 한국인이 알고 있는 IT 이야기이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위의 비판 없이 앞으로 이어질 내용에 대해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잘 쓸 수 없었다. 어느 정도 다들 아는 이야기로부터 글을 시작해야 읽는 맛이 나는 법인데, 재미 없는 구성이 되고 말았다.

역설적이게도 IT에 대한 몰이해를 주도한 것은 IT 부흥 당시 인문학자들이 아닌 공학자들이었다. IT의 본격적인 발전에 앞서 IT의 가능성에 대한 정성적인 연구와 예측이 있었기 때문에[각주:4] 인문학자들 사이에서는 정보화가 산업화와는 다른 축을 구성한다는 것이 거의 사실로 여겨졌다고 보아도 옳다. 그러나 공학자들이 IT를 보는 방식은 다소 달랐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기술 분야 현장에서 IT가 어떻게 응용되는지를 직접 겪게 되었다. 일부는 몸소 컴퓨터를 자신의 분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에 비추어 이 기술 분야의 전망을 구체적으로 따지게 된다.

굳이 문제를 제기하자면, 소프트웨어의 본질은 당시의 컴퓨터 공학자들이 알던 것으로부터 그다지 변하지 않은 반면 소프트웨어 개발의 본질은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다수의 개발은 앞에서 말했듯이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계층에서의 설계로 시작된다.[각주:5] 좋은 개발 환경 덕분에 마우스 드래그 몇 번으로 산출물의 프로토타입이 나오고 심지어는 프로그램의 본체를 만들기도 한다.[각주:6] 원시 코드가 수백만 줄에 달하고 똑똑한 컴파일러 덕분에 1000종이 넘는 하드웨어를 소화하는 하나의 소프트웨어도 있으며,10년, 20년이 넘도록 하드웨어 성능이 수천 배 성장하는 동안 수천명이 유지보수하는 소프트웨어도 있다.[각주:7] 멀티미디어와 초고속 통신, 클라우드, 빅 데이터까지 소프트웨어의 규모를 기하급수적으로 뻥튀기하는 키워드는 차고 넘친다.

그리고 이 모든 분야가 컴퓨터 엔지니어, 컴퓨터 사이언티스트가 만들어 온 시대의 유산이자 미래의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컴퓨터를 공부해서 IT 강국을 만들고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특히 IT 버블이 붕괴한 여파가 가시지 않은 채 IMF 경제 위기가 왔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한때 대학 입시에서 상경계열과 의과 분야에 어깨를 나란히 하던 공학은 그렇게 추락해서 인문학보다도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 사실 소위 '감성 팔이'와 '미래의 IT'에 대한 식견은 누구에게나 있었다. 바보같은 투자, 바보같은 연봉 책정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바보같은 중소기업이 없고 대기업만 있는 나라에서 피해를 본 건 인문학도 마찬가지였다.

요즘은 어떤가. 공학자들이 보는 소프트웨어는 더욱 바닥으로 떨어졌다. 컴퓨터의 접근성이 높아진 만큼 역설적으로 컴퓨터의 가능성은 오히려 낮게 평가된다. 다들 필요한 일에 잘 쓰기 때문이다. 웬만한 일은 비싼 데스크탑 시스템에서 매틀랩을 켜고 매뉴얼에 따라 코드 몇 줄을 입력하면 몇 시간 후에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자세한 이유는 궁금하지 않지만, 그들은 그렇게 배웠다.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자신들의 가치를 창출해 왔다. 산업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IT의 성과는 이전의 기술을 토대로 만들어진 부가가치일 뿐이다. 그것은 가산된 가치에 해당하는 만큼의 인적 자원으로부터 만들어지며, 그에 상응하는 대가 이하를 지불하는 것으로 거래가 성사된다. 비즈니스 모델은 변하지 않는다.

진정 어떻게 앞서나갈 것인가

요컨대 공학자가 보는 소프트웨어로부터 시작하자. 소프트웨어는 코드 조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자신의 분야에서 연구를 계속할 것이라면 단순히 계산 결과를 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소프트웨어는 위의 '책을 읽는 과정'처럼 일목요연한 논리에 맞추어 섬세하게 모델화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연구자의 것이 된다. 그것은 이전처럼 단지 예정된 입력과 출력을 갖는 도구가 아니게 된다. 하나의 코드는 무엇보다도 명확한 언어로써, 논문의 일부가 되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며 다른 연구자의 구체적인 피드백에 대해 열려 있는 소통의 매개체가 된다. IT라는 분야는 한때 다른 분야의 교과서 끝자락에 '미래의 ~~기술'에 언급되는 것으로 충분했을지 모른다. 그 가능성은 거의 전부가 진작에 현실화되었다. IT에 대한 교과서, 컴퓨터 과학(전산학)에 대한 교과서를 읽을 때이다.

소프트웨어에 대한 이해는 기본 소양이 되어야 한다. 굳이 지금의 중등교육 시스템에 프로그래밍 교육을 넣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모든 이가 소프트웨어라는 가능성과 창의성의 영역을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의 중등교육에 소프트웨어 교육을 넣는 것은 환영할 일이 아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필자는 중학교 때 단순암기의 중압감을 버티지 못하고 국사를 거의 공부하지 않았다. 한편 한때 학생들에게 가능성과 창의성의 영역이었던 발명교육은 이제 완전히 외면받고 있다. 컴퓨터 분야가 이렇게 무너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 창의력은 환경의 문제이다. 초등학교 교육부터가 모든 학생들이 주류 교육학자들이 말하는 올바른 방식을 올바른 순서로 따르기를 강요하는데,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자신이 남들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고 피력할 것인가? 필자는 학생들이 소프트웨어를 과목으로 기억하기 시작하고, 그래서 소프트웨어 관련 뉴스에서도 정답을 찾는 미래의 사회가 두렵다. 물론 소프트웨어 교육에서 부정적인 가능성만 제기하고 싶지는 않다. 긍정적인 가능성은 이미 많은 곳에서 지적되어 왔다.

어떻게든 우선 IT의 현재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눈을 뜨고 미래를 향해 직진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IT와 소프트웨어에 거품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머지않아 키보드와 마우스가 완전히 사라지고 영상인식, 음성인식이 그 자리를 대체할 거라는 공언을 본 적이 있다. 도대체 그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린다는 것인가?[각주:8] 인간 친화적인 소프트웨어가 중요해질수록 소프트웨어와 관련된 노동의 절대량이 늘어난다. 소프트웨어가 노동으로 굴러가는 건 전혀 아니지만, 소프트웨어 노동은 바로 이 키보드와 마우스에 묶여 있다. 이른바 프로그래밍, 대놓고 말하자면 그 중에서도 코딩이다. 직접 IT를 공부하지는 않더라도, 그런 분들이 조언을 얻을 만한 이공계 쪽 전문가 한 분을 못 구하는 걸까? 하긴 컴퓨터만 붙잡고 있는 사람들이 글을 매일 수백 줄 고쳐 쓰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만, 이런 차이로부터 제대로 된 연구냐 아니냐가 구분되는 것이다.

전자공학, 생명공학, 의공학, 사회학 등등의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컴퓨터 분야와의 융합 연구나, 사실상 컴퓨터 분야인 연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각주:9] 이것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지훈(hiconcep)은 2011년 한 특강에서 미래를 주도적으로 설계하기 위해서는 IT와 관련된 융합학적 시선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IT는 사회를 바꿀 힘을 갖고 있고, 사회를 둘러싼 우리의 세계는 이미 변했다는 정확한 논지였다. 그러나 그 분은 "막상 사회의 구조가 변해야 우리가 주도를 할 수 있는데 과연 누가 그 일을 맡아서 하겠습니까"라는 질문에 "그건 느리게나마 저절로 됩니다"라고 답변한다. 불확실한 미래를 감수하고 몸을 던져 사회를 바뀌기를 기다리라는 말과, 자신이 몸을 던질 미래를 위해 사회를 바꾸는 데에도 신경써야 한다는 말이 있다면, 필자라면 후자를 택했을 것이다. 이 글은 그래서 쓰였다.

  1. 글을 주의깊게 읽고 있는 프로그래머라면 대강 이 목록에서 어느 것이 어떤 패러다임에 대응하고 있는지 눈치챘을 것이다. 절차지향 명령형, 객체지향, 함수형의 순이다. [본문으로]
  2. 페이스북처럼 좋은 세일즈 포인트를 말하는 게 아니다. [본문으로]
  3. 그 글의 요지는 대강 이랬다. 컴퓨터공학은 (소프트웨어공학을 의미하는 것이었을 테다) 제품에 집중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인문학적 소양이 없으면 상품을 만들 수 없다는 것. 우리나라 IT 제품들이 세계 시장에서 부진했던 것도 이 탓이었다고 터무니없는 근거를 들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는 좀 오래된 글이다. [본문으로]
  4. 대표적인 것이 로봇이다. [본문으로]
  5. 비전공자를 위해 일러 두자면, 원래 프로그래밍이란 최초의 전자식 컴퓨터로 흔히 일컬어지는 에니악(ENIAC)에서도 행해지던 것이다. 에니악의 엔지니어는 계산이 하나 끝날 때마다 계산식을 바꾸기 위해 집채만한 진공관들의 배선을 손수 바꿔야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쓰는 프로그램 파일의 0과 1은 그때의 0과 1에서 달라진 것이 없다. 어찌 보면, 다만 그 0과 1을 한땀한땀 만들지 않게 된 것뿐이다. [본문으로]
  6. 이런 빠른 프로토타이핑, 빠른 개발이 좋은 문화인지는 논외로 하자. 관점에 따라 장단점이 있다고만 언급하고 넘어간다. [본문으로]
  7. 리눅스 커널. 정확한 수치는 찾아보면 나온다. [본문으로]
  8. 솔직히 미래학자에게 '그게 도대체 언제라는 말이오' 식의 응대는 정말 힘 빠지는 게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연구에 제대로 된 응대를 받으려면 우선 정성적인 절차를 거쳐야 할 것 아닌가. 당시 그 발언이 단지 일반인의 컴퓨터 사용에 대한 주장이었다 해도 터치스크린이나 동작인식이 없어서 틀렸다. 뇌파라고 했으면 모르겠다.. [본문으로]
  9. 당장 국비 과제가 분야를 넘나들지 못하는 건 우리나라의 많은 학계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본문으로]

인간 클론에 관해 끄적임.

Views/Overview | 2013.04.11 18:02 | Posted by 어­리

오늘 법학 수업에서 인간 복제에 관한 찬반 토론이 있었다. 내가 프로그래밍만 하고 사는 공돌이 감성이 됐나, 세상을 객체지향으로 바라보게 됐나, 그냥 날씨가 추웠던 건가. 잘 모르겠다. 이전에는 인간 복제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었는데 오늘 수업에서는 딱히 금지할 이유가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너무 대충 적어서 이 글에는 딱히 근거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나는 다들 복제 인간에 대한 도구적, 수단적 (이를테면 의료나 보험) 전제를 깔고 이야기하길래 약간 의아했다. 지적 장애인의 권리, 동물의 권리도 여러 관계 설정해서 다 보호해 주면서, 왜 클론은 함부로 다루지도 못할 만큼 숭고한 것이 되는지 잘 모르겠다. 아니 애초에 왜 인간을 만들어 놓고 권리를 짓밟는 상황과 타협을 하려는지 모르겠다. 만약에 클론이 태어날 수 있다면 개개의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인정하면 큰 하자가 생기는 건가?

클론이 별개의 생명으로 완전히 존중받는다면 문제는 달라질 것 같다. 클론의 생명을 도구적으로 쓰면 안 된다고 딱 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차피 클로닝은 아이를 낳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클론을 갖는 게 평생의 소원일 수도 있다. 물론 그 클론은 자신이 누군가의 클론으로 태어나기를 바라지 않았겠지만, 아기도 자기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는 경우는 없다. 인공 자궁을 모두 국가에 등록하고, 만들어지는 클론을 죽이는 것은 낙태와 동급 이상으로 취급할 수 있다. 클론을 출생 등록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출생 등록보다 더 크게 처벌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난 내 클론이 생기는 게 싫고, 도구적으로든 아니든 세상이 클론으로 넘치는 것도 싫다. 만약 자기 클론이 생기는 게 싫다면, 만들지 않으면 된다. 아는 사람이 자신의 클론을 만들어 혐오감이 든다면, 다른 아는 사람과 도덕적 견해가 충돌할 때마냥 상종을 안 하면 된다. 애초에 클론을 도구적으로 쓰고 싶은 사람이 다수더라도 도구적으로 쓸 수 없게 한다면 누가 얼마나 클론을 만들까?

이런 가정이라면 법적으로 클로닝 자체를 정당화하지 않는 정당한 근거는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지금의 법과 관습이 초토화된다는 이유이다. 근데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클론을 도구적으로 쓸 가능성을 막는 게 정당할 것 같다고 생각할 뿐이다. 다른 하나는 클론이 인공적인 환경에서 잘못 태어날 확률이 크다는 것인데, 다자간의 양육권 분배가 필요해지는 시점이다. 결론은, 큰 문제 없이 어울려 살겠죠. 누가 자기 클론을 100명쯤 만들어서 법적으로 정당한 가정교육의 범위 내에서 군대를 만들어 버릴 가능성은 있겠지만.


여담. 인공 수정을 하면 일란성 쌍둥이가 생기기 쉽다는데, 만약 이걸 고의로 한다면, 사실상 복제 배아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막 태어난 태아를 복제하는 것과 복제 배아를 이식하는 것에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심각한 권리침해이고 어느 쪽이 더 부자연스러운 방식이지? 미성년이나 본인 의사 없는 성인이 복제되는 것은 금지해야 할텐데, 자식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자식이 이미 죽어 권리를 다한 부모나 다른 사자의 살아 있는 체세포를 복제하는 경우도 있을 거고..

구글이 WebRTC를 안드로이드용 크롬 안정 빌드로 가져왔다.


파폭도 베타에서랑 결제 모듈이라든가 바쁘던데... W8/WP8은 뒷전인가? 잘 모르겠다.

안드로이드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는 이전 버전들과 상당히 많이 달라졌다. 안드로이드 팀은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나 많은 극적 변화를 채택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솔직히 내게 진저브레드까지의 안드로이드는 그다지 쓰고 싶은 스마트폰 OS가 아니었다. 그러나 허니컴은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세련되게 다시 디자인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고,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는 이들을 멋지게 통합해 발전시켰다.


많은 변화는 앞으로도 안드로이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이고, 구글의 에너지는 점점 안드로이드를 중심으로 집중될 것이다. 이 글에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를 토대로 내가 생각하는 젤리빈 이후 안드로이드의 모습을, 안드로이드가 기대되는 이유들을 간단히 적는다.


메모리 관리 모델의 안정화


아이스크림 샌드위치의 어플리케이션 생명 주기가 확연히 달라졌다는 점은 안드로이드 구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들어 봤을 것이다. 이전과 달리, 이제 안드로이드는 앱의 활동과 생사를 확실히 통제한다. 이는 한때 아이스크림 샌드위치에서 몇몇 앱이 스레드 문제로 멎는 현상을 초래했지만, 이런 문제는 사라지고 있다. 안드로이드는, 이제 메모리에 상주시킬 데이터와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 샌드위치에서는 아직 이 모델이 불안정하고 필요 없는 데이터도 메모리에 적지 않지만, 이 문제는 머지않아 해결될 것이다. 나는 이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스마트폰 OS는 그 자체로 스마트해질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글 글래스


이미 구글 글래스는 안드로이드와 엄청난 시너지를 낼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글래스는 구글 플러스 플랫폼와 강력하게 결합해 안드로이드 기기의 구글 의존성을 훨씬 쓸모있게 만들 뿐더러, 오늘날의 안드로이드 기기를 갈아치우는 패러다임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글래스의 기본 조작 매체는 손이겠지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음성인식이 될 수도 있고 모션이 될 수도 있고 가까운 미래에는 생각 자체가 될 수도 있다. 글래스가 안드로이드의 조작 매체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 아마 구글에서 글래스를 평범한 모습으로 내놓지는 않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음성인식 어시스턴트


음성인식 어시스턴트는 젤리빈의 중요한 특징으로 예정되어 있다. 잘 정의된 음성인식은 접근성에 매우 중요하하며, 이는 젤리빈의 접근성 향상 문제와도 직결된다. 음성인식으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더 큰 열린 가능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도 사실 애플이 아니라 구글이다. 코드네임 마젤은 애플의 시리에 비해 특히 다국어 처리에 상당한 이점을 보일 것이다. 구글이 음소 처리와 의미 처리에 대한 메타 언어 플랫폼을 정의하기만 하면, 그 오픈 소스를 가져다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언어에 대한 음성인식 어시스턴트를 개발할 수 있는 것이다. 디바이스 벤더들과 애프터마켓 펌웨어 팀들이 경쟁적으로 이 작업에 착수할 것이다. 구글에서 이 창의력 발산을 어떻게 통합 관리할지도 흥미로운 일이다.


많은 디바이스 진출


위의 메모리 관리 모델 문제와 글래스에 더불어, 안드로이드는 이제 많은 기기로 나갈 준비가 거의 되었다. 우선 x86 문제이다. 인텔 x86에 안드로이드를 얹는 건 전혀 문제가 안 되지만, 태블릿이나 랩탑은 안드로이드를 스마트 디바이스 OS로 돌리기에 적절한 기기가 아니었다. 그러나 일전에 x86 NDK가 준비되고, 이제 메모리 모델도 개선되었으며, 태블릿과 폰을 통합하는 UI가 만들어졌다. 달빅 머신이 하드웨어를 낭비하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자바의 예처럼 달빅 코드를 직접 돌리는 프로세서가 만들어질지 누가 아는가? 또한, 구글 TV는 흑역사가 되었지만, 기기 간의 상호작용은 아이스크림 샌드위치에서 획기적으로 개선되었고, 이것을 미디어의 종류에 따라 어떻게 운용해야 할지는 구글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문제이다. 구글은 지금의 안드로이드가 데이터를 다루는 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클라우드를 집에서 운용하고,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데 안드로이드 앱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다. 아마 안드로이드를 직접 돌리거나 안드로이드와 호환성을 갖는 머신이 물리적으로 근처에 있는 다른 안드로이드 디바이스와 빠르게 상호작용하지 않을까.


보다 풍성한 그래픽과 일관성 있는 유저 인터페이스


어플리케이션 간에 유저 인터페이스가 전혀 일관적이지 않다는 것은 유저 측면에서 안드로이드의 가장 시급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하나는 디자인 가이드라인이 전혀 없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사실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만들 만큼 안드로이드의 그래픽 밑바탕이 그다지 탄탄하지 않다는 점이다.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는 레이아웃과 뷰를 강제로 구조조정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 스타일은 앞으로 안드로이드 어플리케이션을 어떻게 디자인 해야 일관성을 해치지 않으며 사용하기 쉽고 예쁘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결정적 힌트를 제공한다. 이제 젤리빈 이후의 안드로이드는 지금처럼 OpenGL ES를 화면 관리에 보조적으로 사용할 뿐만 아니라, 어플리케이션이 멋진 화면 전환과 컬러풀한 테마를 사용하고 실감나는 게임을 구현할 수 있도록 OpenGL ES와 관련된 자원을 빠르게 제공할 것이다.

역대 한글날 구글 두들(Google Doodle)

Views/Overview | 2010.10.10 11:31 | Posted by 어­리
어제(2010.10.9)가 한글날이었죠.

검색 엔진으로 유명해진 포털 사이트, 구글. (이제 이런 소개도 식상하고)
구글에서는 기념일마다 메인 페이지의 로고를 특별하게 교체해 주고 있습니다.
이걸 '낙서'의 뜻에서 '두들'(doodle)이라고 부르는데, 어제도 한글날 구글 두들이 있었습니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어제의 것이 최초의 한글날 구글 두들은 아니었어요.
2005
위의 그림이 2005년 최초의 한글날 구글 두들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ㅎ 꽤나 귀엽다고 생각했어요. ㅎ
앞으로도 한글날에 계속 서비스를 해 주려나... 했지만 그건 아니더군요.

다음은 3년 후, 2008년 한글날 구글 두들입니다.
2008
Google의 'gl'을 '글'로 바꿔 버린 멋진 로고가 등장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칭찬했던 그것이죠.
저는 보고 흐뭇해했지만(저만 그런 건 아닙니다) 다음 해를 잠시나마 걱정했습니다.
이보다 좋은 게 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데... 과연?

그리고 이듬해인 2009년에는 더 참신한(?) 게 나와 버리죠.
2009
과연 충격과 공포.
한글이 언제부터 그림 문자(...)였던가 생각했습니다.
나름대로 Google도 유지하지 않을 정도로 독특하게 신경써서 만들어진 것 같은데요...
이걸 보고 좋다는 말이 먼저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고 기억합니다.

2010
아시다시피 2010년 한글날 구글 두들입니다.
'gl' 부분을 바꾼 건 2008년이나 다름이 없는데 참신함은 그 때보다 떨어지네요...
어쨌든 2009년에 잃을 뻔한 신용은 되찾은 것 같습니다.

2011년에도 한글날 두들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에 나올 것은 2008년의 즐거운 충격을 뒤엎기에 모자라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역대 구글 두들은 이곳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google.com/logos/

구글 두들 디자인 담당자는 한국인 데니스 황(황정목)입니다.
지금은 국제 웹 마스터 일이 훨씬 많아서 디자인은 전체 일의 20% 정도라고 하네요. 많은 건가? ㅋㅋ
헷갈려 하는 분들이 많은데, 아래 구글의 공식 로고 디자이너는 루스 케다(Ruth Kedar)입니다.
1999년 8월부터 2010년 5월까지 쓰였던 구글 로고입니다.

2010년 5월부터 쓰이는 구글 로고입니다. (최초의 로고 변경은 아니었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Google_logo
http://un-i.tistory.com/entry/Writing-Wikipedia
위 글에서 주절거렸지만, 위키백과에 날 잡아서 글쓰기가 내 스타일.
이번에 쓴 글은 이거다.

휴대전화 외부단자 접속 통합 표준
http://ko.wikipedia.org/wiki/%ED%9C%B4%EB%8C%80%EC%A0%84%ED%99%94_%EC%99%B8%EB%B6%80%EB%8B%A8%EC%9E%90_%EC%A0%91%EC%86%8D_%ED%86%B5%ED%95%A9_%ED%91%9C%EC%A4%80

글 히스토리에 따르면 처음부터 Juniuswikia의 5584바이트.
중간에 한 명의 기여가 있지만 분류를 넣어 주신 거다. 43바이트.
그 이후 세 번 모두 내 기여다. 7000바이트를 넘겼다.
비반달적(非vandal-) 반동 분자 수준 (...)

사실 이런 마이너하고 매니아틱해 보이지만 실상 매우 중요한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없다.
이 글은 예전부터 쓰고 싶었다.
다른 주제는 영어판에 자료가 많은데 이건 당연히 아무 데도 없지.
백과사전에 넣으면 참고 되기 좋을 주제인데, 일반인이 보기에 적절하게 구성하기 너무 힘들었다.
그 때문인지 내가 쓰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했던 것일까.

24핀 표준이 있다는 사실 자체는 거의 표준이 나오자마자 알게 되었다. 유명했으니까.
하지만 정보를 찾으려니까 없더라. 글마다 젠더, 충전기, 케이블... 이런 이야기만 나오고.
아니, USB 케이블에 4개 충전기에 5개 할당되면 나머지 15개 핀은 뭐야?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 중에 3년쯤 전, 표준이 20핀으로 개정되었고, 조바심이 들었달까?
그래서 늦었지만 작년에야 인터넷을 통해 규격 문서를 구하고 공부를 했다-_-.
역시 규격 기술 문서는 재미있어.

때려치우고, 일단 20핀은 확실히 획기적이고 효율적이다. 쓸모가 있다.
자세한 사항은 기술 문서를 보면 되겠지만 대부분의 사실은 위키백과 문서에 써 놓았다.


한 가지 의심스러운 점이 남아 있었다면,
표준 문서에서 Device-Detection 핀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이다.

20핀은 USB 연결을 지원한다.
이 때 USB의 세부기술적 표준은 USB-IF에서 정한 것을 그대로 따르므로,
USB 호스트에 연결된 디바이스는 전원을 받으면 곧바로 장치 정보를 보낸다.
24핀-USB 케이블에서 모바일은 항상 디바이스이며, 대개 20핀-USB도 그렇다.

그러나 단말기가 USB OTG(On-The-Go)를 지원하는 경우 다르다.
20핀부터 단말기는 자신이 각종 장치의 호스트 역할을 할 수 있으며 USB도 마찬가지.
호스트와 게스트 역할에서 같은 핀을 사용하려는 것이 온더고(OTG)이지만 생략하고 넘어가자.
참고: http://en.wikipedia.org/wiki/USB_On-The-Go
어쨌든 단말기 외부에서 20핀의 Device-Detection 핀과 Ground 사이에 일정 저항을 걸어 주면,
단말기 내부 아날로그 비교기의 전위차가 2.4V 내로 떨어지면서 '외부장치'(accessory)로 인지된다.
게다가 100kOhm은 'USB OTG를 지원하는 외부장치'라 되어 있다.
내겐 이게 문제였다. 대체 누가 누구를 지원한다는 거야.

결국 어제 TTA에서 전화를 돌리고 돌린 덕분에 실무자 분께 정확한 대답을 얻어냈다.
20핀에서 Device-Detection 핀이 사용되는 것은 단말기가 호스트가 되는 경우입니다. 표준 문서에서 '외부장치'(accessory)란 여기서 단말기 20핀에 의존적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PC에 단말기를 USB 디바이스로 연결하는 경우 Device-Detection 핀이 사용된다는 사실은 일종의 모순(conflict)입니다. 그러므로 20핀 단말기를 USB 디바이스로 연결하는 USB A 플러그 - TTA 20핀 플러그에서 Device-Detection 핀은 아무런 관련이 없으므로 이 둘은 절연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교기의 기준 전압이 2.4V 미만으로 떨어지는 순간 인터럽트가 발생하여 휴대전화는 '외부장치'를 인식하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는 별개로, 'USB OTG를 지원하는 외부장치'라는 것은 '단말기가 USB OTG를 지원하는 경우'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물론 외부장치에서 OTG에 필요한 기반(ADP, SRP, HNP 등)을 지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즉, 20핀 USB 케이블은 단말기에게 외부장치가 아니라는 뜻이다. 너무나 당연한 건가?

p.s.
1. 제가 모르는 것도 있고 중간에 핀 이름마저 잘못 불렀는데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2. 난 여태 OTG는 호스트에서만 지원하면 되는 줄 알았어.. orz
3. 통화를 80분 정도 했다. 결국 (show)이 다 떨어졌어.
그런데 충전일은 8일이다. 충전 직전까지 음성통화 80분어치의 알이 남아 있었던 건가!
4. 솔직히 USB는 micro-AB 리셉터클을 놓아 주는 게 오히려 자원 절약에 가까운데...
버릇없는 말이지만, 표준이 살아남기 위해서 USB를 놓지 않고 있는 건가?

위키백과에 글 쓰기.

Views/Overview | 2010.10.07 19:25 | Posted by 어­리
사실에 관한 글을 쓰는 데에는 책임이 따른다.
역시 아무리 위키백과에 글을 쓴다 해도 어느 정도의 책임 의식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읽는 사람은 사실이라고 생각할테니까.
그리고 누군가 사실이라고 믿는 한 정보는 사실 여부에 무관하게 빠르게 퍼져 나갈 수 있다.
이런 생각 때문인지 난 위키백과에 글을 쓸 때에도 상당히 진지해지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특히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사안의 경우엔 아예 날을 잡아서 쓴다.

1000바이트 미만의 토막글로 시작해도 어느새 양이 늘어나는 게 위키백과 글쓰기의 장점이지만...
읽을 만한 정보가 되려면 너무 오래 걸린다.
위키백과 표제어가 될 정도면 대개 이미 그 주제에 관한 전문적인 내용이 많이 있는데,
처음 쓰는 사람이 그걸 몰라서 짧게 썼을까?

아무래도 일단 써야 할 내용을 여러 사람이 정확히 잡고 발전시키는 기존의 글쓰기가 좋거나...
아니면 위키프로젝트에 가입을 하거나.
하지만 위키프로젝트 역시 짧은 시간 안에 지식을 모으기는 힘들다. 위키니까.
써야 할 글은 많은데 주제별 프로젝트에서 잡고 있으면 짜증나는 것이다.
일단 사람을 모으고, 표제어를 만들고, 글을 빠르게 구성하면 좋은데....
그렇다고 해서 토막글은 토막글대로 양산하고 처리는 또 하고... 이건 확실히 비효율적이다.
한 사람이 쓰는 게 제일 빠르다.

결론적으로,
위키백과에 글을 쓴다 해도, 능력이 된다면 책 한 페이지를 쓰는 정도의 정성은 기울이자.
그것도 안 되면 토막글을 발견한 사람은 적극적으로 정보를 추가하기.
물론 나처럼 처음부터 5000바이트를 써 내려가는 건 좀 이상하게 보이지.

사실 내 생각에는, 애초에 토막글만 쓰는 사람이 잘못되었어.

토마토는 과일인가, 채소인가?

Views/Overview | 2010.10.03 13:59 | Posted by 어­리

이 글의 발단은...

뭐 대강 이렇게 이야기는 마무리지어졌습니다.


앞이야기가 길었지만 사실 제 말이 완벽히 맞다고 하기는 힘듭니다.

일단 식물에서 열매란 개화식물의 수정된 꽃에서 씨방이 발달한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토마토 또한 씨방이 발달된 것이므로 생물학적 의미의 '열매'는 분명 맞습니다.
씨앗도 있어요. (...)
과일은 먹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열매를 일컫는 말이며,
결국 토마토는 과일이라고 해도 무방하죠.

그러나 제가 말했듯 토마토는 초본성 식물의 열매라서 채소라고 주로 부릅니다.
뿌리채소, 열매채소, 잎줄기채소의 분류에 대해서는 깊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만...
이 때 토마토와 같은 채소 식물을 열매채소라고 분류합니다.
결국 토마토 열매가 열매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결론: 토마토는 열매가 맞지만, 우리가 쓰는 과일이라는 낱말과 잘 어울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과일이라고 해도 무방함.

('토마토 열매'라는 말은 '토마토'라는 덩굴식물의 열매만을 말하기 위해 썼는데 이미 열매네요-_-.)


p.s. 토마토 이야기들을 보면 닉슨 대 헤든(Nix v. Hedden) 논쟁을 자주 인용합니다.

Nix v. Hedden이 무엇인가요?


참고: 사실 야채라는 단어는 일본어입니다. 한겨레 기사

현재 세계 전자제품 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강력한 회사로 손꼽을 수 있는 삼성과 LG. 이들이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의 판을 이끌어 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 회사들은 PDP보다 LCD에 집중한다.

일단 현재 설계에 따르면 기술적으로 볼 때 PDP는 LCD보다 얇아지기 힘들다. 회사들이 휴대폰보다도 얇은 디스플레이를 만들어 내고 있다. 물론 소비자가 어차피 벽에 걸고 보는 TV인데 얼마나 얇은 것을 원하는가? 만약 패널을 얇게 만들수록 잘 팔린다면 그것은 소비자가 원하는 트렌드가 아니라 회사가 만들어 내는 일시적 유랭에 불과하다. 어쨌든 쓸모 없어 보일 정도로 두께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기술적인 두께 개선은 중요한 사안이다. 특히 BLU가 CCFL에서 LED로 교체되는 상황에서 삼성은 엣지 방식, LG는 전면 방식을 채택해서 삼성이 3mm까지 두께를 줄이는 등 경쟁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럴 경우 LCD는 필수적이다.

또한 PDP는 LCD에 비해 BLU, 즉 배경 광원 장치의 의존도가 크다. PDP의 경우 LCD에 비해 특화된 광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력 소모가 크며 수명도 짧다. 1년 전만 해도 임피던스를 줄이는 등 PDP와 LCD를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LCD에서 경쟁에 불이 붙은 이상 LCD만 계속 발전하고 있다.

게다가 지금 새로운 트렌드가 나타나려 한다. 3차원 디스플레이. 편광 안경을 쓰고 봐야 하는 편광 3차원 화면은 물론, 맨눈으로 3차원 화면을 느낄 수 있는 디스플레이도 상용화되려는 시점에 있다. 3차원 화면을 만들 때엔 LCD나 PDP나 원리상 차이가 없지만, PDP를 3차원으로 만들 경우 화면이 밝을 때엔 푸르고 어두울 때엔 노랗게, 전반적으로 검게 변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LCD의 경우 기본 원리가 편광이기 때문에, 편광의 방향만 빠르게 바꿔 주면 밝기에는 변화가 없다. LCD 패널로 3차원을 구현하기가 좀 더 쉬울 수 있는 것이다. 삼성에서 3D PDP도 연구하고 있다고는 하나, 제품은 LCD로 선보일 것이다.

앞에서 나는 PDP를 열심히 비판한 셈이 되었다. 사실상 지금은 LCD가 점점 우위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첫째로 LCD의 색은 무조건 RGB이다. 색 합성을 아무리 잘 하며 BLU와 오묘하게 조합해도 그것은 인공적인 처리일 뿐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다. 누가 LCD에 필요 없이 색깔 패널을 더하겠는가? 그러나 PDP는 원리상 무한히 정밀한 색을 낼 수 있다. 동등한 연구가 계속된다면 색 표현 자체에 있어서는 PDP가 우월하다.

둘째로 지금 두께와 크기 경쟁이 한창인데, 사실 같은 값이라면 PDP를 LCD보다 얇고 넓게 만들 수 있다. 문제는 그만큼 BLU도 얇아져야 한다는 것인데, PDP는 BLU 의존도가 높아서 얇은 광원을 사용하면 임피던스가 낮아지고 무리가 간다. 즉 PDP를 3mm 두께로 만든다면 아마 백라이트를 6개월~1년마다 교체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기술적인 문제이지 근본적으로 개선 불가능하지 않다.

이런 PDP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여태 LCD는 PDP보다 빠른 개선 속도를 유지했다. 이것은 회사들이 PDP의 장점에 무관심하기 때문이 아니다. PDP의 장점이 충분하다면 홍보 마케팅 요소가 될 수 있는데 왜 써먹지 않겠는가. 사실 LCD 연구가 쉬웠기 때문이다. 같은 연구를 투입하면 LCD가 발전하기 쉬운 것이고, LCD 연구를 더 많이 시키는 것이다. 그래야 내놓을 만한 발전 결과가 더 많이 나오기 때문에.

무슨 말인가 하면, LCD는 겉보기에 나아지기 쉬운 구조를 갖고 있다. 그래서 계속 개발이 진전되는 것이다. 그만큼 LCD의 설계가 지금보다 나아지기는 쉽지 않다. 빠르게 발전할수록 새로운 구조를 생각하기는 힘들다. 현재 LCD의 구조는 배경 광원(BLU) + 색상 패널(RGB TR) + 겉유리로 되어 있다. 여기서 무엇을 더 줄이겠는가. 다만 광원을 교체하고, 색상 패널을 교체하고, 겉유리를 교체할 뿐이다. 이는 ‘개량’일 뿐이다.

하지만 PDP의 문제는 대체 가능하다. PDP는 구조가 복잡하다. LCD가 개량되는 동안 PDP가 발전하는 속도는 LCD를 따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LCD와 PDP가 어느 정도 같은 속도로 개량되던 동안 PDP나 LCD 모두 구조를 유지했다. PDP가 기술적으로 개량되기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렇게 기술적으로 개선되기 힘든 것이라면 이에 근본적인 연구 방법이 따라야 한다. 연구자들은 이제 PDP를 어떻게 개량할지가 아니라, PDP의 플라즈마 재료를 어떻게 바꾸고, 어떤 부품과 어떤 부품을 어떻게 합칠 수 있으며, 광원 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정리해 보자. PDP의 장점은 더욱 얇고 크며, 패널이 같은 크기에서 가볍고, 기본적으로 LCD에 비해 색상 자유도가 10조 배 이상이고, 검고 어두운 색 표현을 훨씬 잘 하고, 시야각이 178° 이상이며, 움직이는 물체가 흐려지지 않는다는 것 등이다. PDP의 장점은 곧 LCD의 단점이다. 이것들은 기술적인 문제들이고, LCD는 이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했다. LCD 색상 패널의 재료와 구조를 바꾸었고, 배경 광원을 CCFL에서 LED로 바꾼 후 부분 점등을 적용해 검은색을 표현했다.

PDP의 단점은 32인치보다 작아질 수 없으며, 넓은 범위에서 잔상이 생기고 깜박이며, 오래 쓸 수록 빛이 약해지고, 두꺼운 덮개 유리가 필요해서 무거우며, 밝은 곳에서 반대로 비치며, 전력 소모가 크고, 기압 적응이 안 되고, AM 라디오 전파를 방해한다는 것 등이다. 이것들은 근본적인 문제이며, PDP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개선되기 힘든 문제이다. 기술적으로 개선하려는 시도들이 있었지만, LCD의 발전 속도가 더 빠른 것을 어쩌겠는가?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PDP는 LCD에 비해 원리상 근본적인 결함이 많았지만 여태 거의 동등하게 달려왔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다면 기술적으로 해결하기도 쉬워질 것이고, LCD를 훨씬 앞설 수 있는 것이다. PDP에는 문제가 있지만, 오히려 그 문제가 있기 때문에 현재 PDP와 동일한 LCD에 비해 ‘잠재적인 발전 여지’가 더 강력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PDP에는 언젠가 ‘혁신’이 일어날 것이다. PDP의 기본 구조가 LCD만큼이나 간단해지는 그 날, PDP의 수많은 장점은 빛을 발할 것이고, LCD가 PDP로 교체될 것이다. 내 생각에 이 일은 앞으로 5년 안에 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