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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가속도 운동' 논쟁에 덧붙여

어­리 2015. 11. 29. 17:09

발단은 트위터의 엑스아미닥 씨가 올린 한 트윗에 내가 이런 트윗을 쓴 것.

요약: 등속도 운동은 등가속도 운동입니다.

요즘 재발굴되고 있는 “저 비가 무슨 운동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아련)” 밈에 대해 트위터에서 몇몇 사용자들을 중심으로 ‘등속운동이 아니라 등가속운동 아니냐’, ‘등속운동이 맞다’ 식의 단타트윗들이 잠시 솟아올랐다. 엑스아미닥 씨는 이에 대해 ‘빗방울은 어떤 구간에서도 등가속 운동을 하지 않는다’ 라고 올렸고 (원본 삭제됨) 그에 대한 내 첨언이 위 트윗이다.

내가 받은 답글. (이 역시 원본 삭제되어 앱에서의 스크린 캡처 이미지로 갈음함)

기존의 개념을 무시하는 말장난이라신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트윗에서 다 했으니, 이미지 먼저 올린다.

퍼블릭 트윗으로 바꿔 가면서까지 관심과 호응을 유도하는 모습이다. 그래도 난 최대한 정중하게 대응했다.

트윗 이미지는 여기까지. 그저 개인적으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캡처 이미지를 올린 것이며 다른 의도는 없다. 나는 어떤 트윗도 삭제하지 않았으나, 일관성을 위해 지워지지 않은 트윗을 포함해 전 트윗을 이미지로 인용하였다.


‘등가속운동’(또는 ‘등가속도운동’)은 영어로도 ‘motion with constant acceleration’으로 풀이되는, 가속도가 일정하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대학교 일반물리 교과서에서도 변위(displacement)의 시간(time)에 대한 2계 도함수(second derivative) 값이 0인 구간으로 우아하게 정의되어 있다. 이는 수학에서의 상수함수 개념과 해석학의 성과를 그대로 가져와 a(t)=0(const.) 역시 등가속도 운동(등가속도 상태)이라는 개념에 편입한 사례이다. 그러므로 사실 등가속도 운동이 a(t)=0(const.)를 포함하지 않는다는 견해도 타당하게 여겨질 수 있다는 식으로 내가 진지하게 임해 줄 필요조차 없었다. 차라리 가속도가 0이어도 등가속 운동인 게 명확하며, 당신 방식대로 정의하는 것은 현 과학 용어 체계에서 틀렸다고 명확하게 말했더라면 이런 모욕을 당하지는 않았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폄하를 받을 뿐인가 보다. 상대방의 타당성을 존중하며 온건하게 대화해 봤자 소용이 없다. 제 나름 과학에 관해 말한다는 분과 얘기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논쟁의 본질이 과학철학적 논의라는 내 지적이 왜 유효한 것인지부터 다시 정리하고 넘어가겠다. 과학 자체가 불변의 진리로 이루어져 있지 않음은 물론, 과학의 역사가 정적이거나 점진적이었던 적조차 없다는 지적은 더 이상 필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견의 여지가 있지만, 기존의 이론체계에 대한 비판과 반증을 구하여 발전하는 것이야말로 과학의 본질이라는 칼 포퍼의 견해와, 충분히 많은 반례가 정상과학을 무너뜨려야 비로소 다른 이론체계를 만드는 보수성과 토마스 쿤의 견해는, 이들을 빼고는 무엇이 과학인가를 논할 수 없을 정도로 과학철학의 큰 기둥이다.

두 거장의 사례만 보더라도, 과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논의에서 관념, 기호, 언어에 대한 철학이 빠진 적이 없다. 사실 이는 과학철학 자체가 새로운 철학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루는 기존의 철학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내 과학이 지닌 언어적 속성은 '패러다임'이라는 단어를 빌려와 사실상 정례화된다. (물론 그가 '패러다임'을 너무 여러 의미로 남발했다는 지적도 있다.)

이것도 사실 트위터에서 이미 한 얘기다.

(물론 이들은 거의 비과학인 것과 명백히 과학인 것, 또는 명백히 비과학인 것과 거의 과학인 것 사이에서 씨름을 했던 학자들이기 때문에, 과학적 활동 자체의 내면을 파헤치기 위해서는 장하석(2007)을 읽는 것이 나을 것이다.)

소위 유사과학 비판하던 과학 계정들이 내게 보인 비난과 조소의 현장으로 이 글을 마친다.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겠지. 다들 흑역사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다들 그걸 토대로 돌아보고 올라서며 발전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보면, 대체로 그냥 '삭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