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stem Idle Talks/흔한 자산 목록

만화로 본 발명·특허 이야기 (2001)

어­리 2013. 10. 22. 05:33

특허청의 사업으로 나온 책. 어떻게 얻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특허청 사무소는 아니겠고 아마 중학교 때 과학반 활동하면서 관련 일로 상공회의소에 찾아갔다가 한 권 집어 왔겠지. 새삼 말할 것도 아니다만 이 책은 발명과 특허(특히 특허제도)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더없이 좋은 교본이다. 그리고 이미 발명에 몸담고 있는 사람에게도 그럭저럭 하나쯤 갖고 있을 추억의 기본서 정도는 되리라 생각한다. 물론 이 시점에서 발명 이야기를 구구절절이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게다가 이 책은 다소 어린 학생 독자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느낌인데 당시 꽤나 인기있던 발명 영재 유행과 같은 맥락에 놓고 보면 그다지 긍정적인 책인 것만은 아니다. 사실 나는 영재라는 단어의 남용을 퍽 탐탁찮게 생각한다. 요즘 발명 영재 쪽은 완전히 한물 가지 않았는가. 아마 소프트웨어 쪽도 요즘 꼴을 보면 평균적으로 돈 잘 벌기는 텄고 머지않아 같은 길을 걸을 지도 모른다. 아아 내 분야가 위험하다니 이게 무슨 소리요.

각설하고. 꽤 오래 된 책인데도 이 제목으로 검색해 보면 당시 기사가 아직도 나온다. 한 가지 흠은 ISBN이 없다는 것. 다행히도 공식적으로 이 자료에 대한 식별번호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검색해 보면 나온다.) 왜 ISBN이 없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정부기관 자료인데 기관이 힘이 없어서도, 돈이 없어서도 아니다. ISBN에 필요한 온갖 식별항들을 구축하기 귀찮기 때문이다. ISBN은 국제 바코드 표준인 EAN/GTIN-13에 호환되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국가 번호 자리에 978이 들어가고 "978 - (국가/언어권 번호) - (발행자/출판사 번호) - (도서 번호) - (체크 자리)"가 되는 식이다. 다소 기술적인 얘기를 꺼냈는데 아무튼 정부 기관이라 해도 출판물에 ISBN을 다는 건 그걸 배제한 일에 비해 꽤나 번거로운 모양새가 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우선 우리나라(ISBN 국가 코드 89)의 서지정보 관리 기관인 '국립중앙도서관 한국문헌번호센터'에 서류를 보내 발행자 번호를 취득한다. 만약 그 기관에 이미 발행자 번호가 있다고 해도 마음대로 도서 번호를 붙이는 게 아니고, 이 또한 신청해서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일단 ISBN을 붙이면 공중에 유통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것이 되기 때문에 사후 관리도 꽤나 힘든 일이 된다. 공무원들의 일에 이 모든 걸 기대하는 건 사치다.

그나마 중앙 정부기관에서 나온 것은 이렇게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수집된다. 이는 다름아니라 도서관법에서 도서관자료의 납본을 강제하고 있기 때문인데(어길 경우 과태료를 문다!), 사실 특허청은 중앙 정부기관인 데다 경험있고 머리 좋은 사람이 많아서 자체 코드로 자료를 관리하고 있으며 납본도 꼬박꼬박 할 것이다. 지방에서 일하는 방식은 이와 달리 대체로 답이 없는 편이다. 물론 말단 공무원 입장에서는 법적으로 공개가 요구되는 자료만으로도 작업량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웬만한 자료는 때가 되면 과감히 버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실 웬만한 자료의 열람이 가능한 지역 자치 시설, 교육 기간 시설의 자료실도 도서관법 상의 도서관에 준하기 때문에, 1년이라도 보존되어 자료실에 있던 자료라면 도서관자료이고, 원칙적으로 사본을 국중도에 납본해서 보존하는 게 맞다!

아무래도 나는 일하는 당사자가 아닌 주제에 이상적인 말만 늘어놓는 보존주의자에 불과한데, 할 말은 해야겠다. 빅 데이터를 강조하는 시대에 공공 정보의 접근성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금 우리나라는 정보공개의 역효과로 대중 사이에 만연한 정치적 무관심과, 그런 공공정보 하나 얻으려면 법적 근거도 없이 개인정보를 우선 제공하고 온갖 보안 플러그인을 설치해야 하는 상황에 동시에 직면하고 있다. 사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이런 문제는 출판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인터넷에 공시해야 한다면 전자책으로 공시하면 되지 않는가. 전자책도 꽤 잘나가겠다, 열람 비용 문제는 전자책의 방식으로 처리하는 한편 이전처럼 학생의 접근성은 침해하지 않는 게 가능하다. 여기서 전자책의 포맷을 굳이 고집할 생각은 없다. 관련 사업에서 적당한 전자책 제작 소프트웨어, 액티브엑스 전자책 뷰어로 돈만 벌 SI 회사를 생각하면 오히려 아니올시다이다. 결론은 보존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 앞에는 예산, 인력, 적극성, 아이디어, 접근성 등 모든 게 넘어야 할 산으로 남아 있다. 이를테면 통계청을 선례로 삼아 중앙기관이 앞장서서 출판을 시작하고 지방에서 그 뒤를 따르면 어떨까. 아무래도 기관 간에 밥그릇 간섭 안 하는 문화도, 상명하복의 문화도 고쳐져야 할 듯하다. 결론을 이렇게 내자니 앞으로 정부 기관이 지금보다 정보 접근성을 높이기는 글러먹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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